(나의여행기록)

옛향기를 찾아 톡톡티는 영월기행

바다위에보석 2016. 11. 12. 13:13

 옛 향기를 찾아 톡톡티는 영월기행

- 전라남도문화관광해설사 강원도 영월 -

[11얼10일 첫날]



관광버스 4대 동원 (지역별 배차)

제 1호차 진도출발  05:40 : 해남강진영암→ 나주 여산 후게소 09:40 도착  (2호차.3호차.4호차 합류


여산휴게소 : 09:40 도착/ 10:00 출발

금왕휴게소 : 11:27 도착/ 11:40 출발

영월 장릉 보리밥 식당 12:55 도착 13:40 보덕사로 출발(도보)

영월 장릉 보리밥 식당

영월 장릉 보리밥 식당

영월 장릉 보리밥 식당을 지나 보덕사로 가던중 민가에 주렁주렁 사과가 달려 깨끗하게 보였다.~~~~

報德寺 입구

報德寺에서 영울군  이갑순 해설사님께서 열정적으로 해설하는 모습에 모두들 경청하고 있다.

해설사들끼리 인증 샷

報德寺에서 단체 촬영

                                                      668년에 창건 단종의 유배지이다.

                                                      극락보전 1개만 있다.

                                                      방향은 서방정토 (서쪽) 단종 임금 영정이 모셔져 있다.

報德寺 解憂所 (보덕사 해우소)

                보덕사 해우소는 평면 구성, 구조방식, 의장 등에서 전통적인 사찰 해우소의 건축형식을 잘 갖추고 있으며, 1882년에 건립되어 12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강원도내에서는 매우 희소한 건물이라고 한다.

報德寺

        백련사란  영월에서  창건되어  이곳 안흥면으로 이전한 사찰로서 주된 가르침은 묘법연화경 즉 법화경 이다.  

       일 의식은 법화경 제16여래수량품이다. 수행법은 중국 천태산 국청사의 지의대사의 법화삼매 참의에 의한 참회법이 주된 수행이다.

報德寺

단종 端宗

  단종은 1441년 7월23일(세종23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 權氏)사이에서 원자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홍위(弘暐)이다.8세가되던 1448년 

  (세종30년)에 왕세손에 책봉(冊封)되었고,예문관제학 윤상으로 부터 학문을 배웠다.

  1450년 2월 (세종32년)에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즉위하게 되자 그해 7월20일 왕세손이었던 홍위는 10세의 나이로 왕세자(王世子)로 책봉되었

  으며, 1542년 5월18일 문종이 승하 후 단종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12세의 어린 나이로 제6대 왕에 즉위하였다.

 계유정난(癸酉靖難)이후 1455년 6월11일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물러주고 15세에 상왕(上王)이 되었으며 (재위기간 91452~1455년), 박팽년,

 성삼문등이 단종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사건이 일어나 1457년(세조3년)노산군으로 강봉된 뒤 1457년

 윤 6월22일 창덕궁을 출발하여 7일후인 윤 6월28일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로 유배 되었다.

 그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사되자 단종은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내려지고 결국 죽음을 강요당해 1457년 10월 24일 유시에 17세의 어린나이로

 관풍헌에서 승하하였다.

단종 端宗 께서 백마를 타셨다 

山神閣 산신각

七星閣 칠성각

四聖殿 사성전

보덕사 해우소 報德寺 解憂所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132호)

엄흥도 정여각 (嚴興道 旌閭閣)

    이 비각은 염흥도의 충절 (忠節)을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영조 2년91726년)에 세운 것이다. 충신 염흥도가 영월호장으로 있을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관풍현에서 1457년 10월24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버려

   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

   받고 있다. 순조 33년 (1833년)에 공조판서(工曹判書)로 추종되었고 고종 13년(1876년)에 충의공(忠毅公)이란 시호를 받았다.

릉의 유래

신도 (神道)

장릉 莊陵  (세계유산, 사적제 196호)



영천 靈泉

   이 영천은 장릉 서쪽에 있는 우물로써 정조 15년(1791년)에 어명으로 영월부사 박기정이 수축하여 한식때 재정(祭井)으로 사용하였다. 보통

    때에는 조금씩 샘물이 솟았으나 매년 한식때 제향을 지낼 때에는 물이 많이 용출 (湧出)하였다.

   우물의 깊이는 1.5m 정도이며 하부는 화강석 돌담으로 둥글게 쌓여 있고 상부는 정방형이다.

영울군 이갑순 해설사님의 해설에 모두들 경청~~~~





영울군 이갑순 해설사님의 해설에 모두들 경청~~~~

영울군 이갑순 해설사님의 해설에 모두들 경청~~~~

제를 지내는 제현~~~다함께 배례^^^^


조선 제6대 단종의 능 가는길

조선 제6대 단종의 능

   장릉 莊陵 9세계유산, 사적 제196호)

   단종은 (1441 ~ 1457, 재위1452~1455)은 제 5대 문종의 아들로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 4개월 만에 세상을 뜨자 12세 어린나이로 왕위에 올랐

   다.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의 출산 후유증으로 출산 후 하루 만에 승하하였고, 단종의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난(1453)으로 권력

   을 잡자 1455년(단종3)세조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듬해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 사육신이 시도한 단종 복위 운동은 실패

   로 돌아갔고, 1457년(세조 3)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으며, 그해 여름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물에 잠기자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현헌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그 해 10월 24일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다.


   1516년(중종 11) 장릉은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고, 1698년 (숙종 24)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한다.

장릉↑↓

   莊陵의 由來 장릉의 유래 : 조선왕조 제6대 임금 단종대왕의 능이다.

단종역사관

   2002년 문을 연 단종역사관관은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재위1452~1455)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되새기기 위해 세운 전시관으로, 단종이 잠

   들어 있는 세계유산 조선왕릉 영월장릉(사적 제196호) 내에 위치해 있다.

   외관은 전통 한옥으로 건축되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며, 1층은 주제별로 전시실이 마련되어 단종의 세자 즉위에서부터 단종대왕으로

   복원되기까지의 일대기를 차근차근 볼 수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특별전시실과 단종유배길, 단종문화제에 관한 자료, 세자의 궁중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을 둘러 볼 수 있다.





단종 대왕영정

        룡포에 익선관을 쓰고 백마를 탄 단종에게 산머루를 바치는 충신 추익한 (秋益漢)의 모습, 운보 김기창 작 (雲補 金基昶 作)

   1457년 단종이 노산군이 되어 청령포로 유뱃길을 떠나던해, 단종의 나이 이제 겨우 17살 이었다. 아이의 얼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앳된 모습

   의 어린 임금 단종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양 옆에 서있는 신하와 시종의 굳어진 표정에서는 청령포에서 귀양생활을 할 단종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을 읽을 수 있다.

청렴포 (육지속의 작은 섬,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를 건너편이 청령포.

청렴포 (육지속의 작은 섬,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를 건너기 위해 배를 타야한다.

청렴포 (육지속의 작은 섬,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를 건너기 위해 배를 타야한다.

청렴포 (육지속의 작은 섬,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를 가기 위해 배를 타고 건너간다.

청렴포 (육지속의 작은 섬,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를 건너기 위해 배를 배를 기다린다.

청령포

   청령포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제6대 왕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1456년 박팽년, 성삼문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

   임이 사전에 누성되어 모두 죽음을 당하는 사육신사건이 일어나고 다음해인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첨지중추원사 이득해가 거느리는 군

   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

   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겻다.

   지금 청령포에는 영조2년(1726)에 세운 금표비 (禁標碑)와 영조39년(1763)에 세운 단묘 재본부시유지비가 세워져 옛일을 전하고 있다.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했던 행랑채

단종이 유배생활시 머물던 집

단종이 유배생활 했던 곳

단종어소 (단종이 유배생활 했던 곳)

   단종어소는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이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

   하던 행량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소 담장 안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가 위치해 있다.

청렴포를 안내해준 문화관광해설사 : 송춘미 (능통한 해설에 모두들 많은걸 배웠다고^^^^^

청렴포를 안내해준 문화관광해설사 : 송춘미 해설에 경청 ~~~~

왕방연시조비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전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며 읊은 시조이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관음송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49호)

   청령포 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소나무크기는 높이 30m 둘레 5m 로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단종 유배시의 수령을 약60년생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음송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49호)

노산대 오르는 길에 인증 샷


노산대

노산대

관음송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49호) 윗부분

노산대에서 내려오는길에 인증 샷



망향탑 오르는길에^^^^

망향탑 올라가는길에^^^^

관음송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49호)

선돌 (신선암) 바위높이 70m

선돌 (이곳 전망대는 해발320m)



김삿갓 문학관관 입구에 허 언 시↑↓


1박했던 동강 시스타

1박했던 동강 시스타

동강시스타 주변 (단풍과 함께 어울리는 암석)

11월 11일 (2일째)

김삿갓 문학관 주차장에서  이갑순 해설사님께서안내

김삿갓 문학관

김삿갓 문학관

삼도 접경지역 (충북.강원도 .경북) 단양. 영월. 영주

김삿갓 묘역 가는길에 나무다리


영월군 안내도




김삿갓 모역

김삿갓 모역

김삿갓 모역

김삿갓 모역

김삿갓 모역

영월현대판 김삿갓 주거지

김삿갓 문학관에서 묘역 가는길 다리


영월현대판 김삿갓 사무실 (난고정)


김삿갓 묘역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께서 해설중

김삿갓 묘역

김삿갓 묘역앞에서 ~~~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께 기념품 전달하는 이연숙회장님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

 김삿갓 묘역에서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 (진도팀)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여수팀)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이연숙 회장님 기념촬영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

영월현대판 김삿갓해설사님과  기념촬영

김삿갓 묘역에서

김삿갓 묘역에서 하산길에^^^^

김삿갓 묘역에서 하산길에^^^^

김삿갓 묘역에서 하산길에^^^^


붓과 벼루가 다리에 걸쳐있다.

김삿갓문학관 앞에서~~~~

김삿갓문학관


김삿갓문학관

김삿갓문학관

김삿갓문학관

김삿갓문학관

김삿갓문학관

김삿갓문학관

김삿갓 가계도

김삿갓 난고 김병연


김삿갓문학관 앞

김삿갓문학관 앞

조선 민화 박물관

조선민화 박물관 올라가는 길


조선민화 박물관 올라가는 길 (출렁다리)

조선민화 박물관 올라가는 길 (출렁다리)

조선민화 박물관

조선민화 박물관 (전시품/ 판매용)

조선민화 박물관  (전시작품  행차)

조선민화 박물관  (전시작품  행차)

조선민화 박물관  (전시작품  행차)

독 사진 ??? (독과 함께촬영해서^^^^)

독 사진 ??? (독과 함께^촬영해서^^^)

월동중인 벌^^^^)

월동중인 벌^^^^)

조선민화 박물관  (내려오는 길)

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뒤 현대 시멘트 공장

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 (우리나라 지도 형상)

한반도 지형 (우리나라 지도 형상)

한반도 지형 (우리나라 지도 형상)

한반도 지형 (우리나라 지도 형상)

한반도 지형 (단체 촬영) (우리나라 지도 형상)

한반도 지형 (우리나라 지도 형상)

탐방로 안내도


피에(카렌) 선돌

   이곳 주차장에서 서울에서 목사님으로 재직중인 집안 同生(박형철)을 만났다. 차가 이동하려고 승차하는데 누가 뒤에서 형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보았더니 목사님이었다.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버스들이 전남문화해설사 영월탐방이란 자막을 보고 형님도 왔을것 같아 찾았다고

   세상이 이렇게 좁을줄이야 잠시 이야기만 하고 음10월20일날 시제때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진도와 서울로 향하였다.



                                                          - 마무리 -


     전라남도문화관광해설사 150여명이 2016년 11월 10일~11일(1박 2일)의 "영월기행"을 정리해 봅니다.


   영월로 가는 톡톡기행은 한마디로 굿~~!!! 서너번의 강원도 탐방중 제일 흐뭇했다.

   1) 역사의 흔적 단종에 관하여 자세히 알았고 정치란 그렇게 무서운 것일까? 어린 조카에게도 사약을 내리고 청령포는 조선시대 천혜의감옥이

      라고 할금표비와 관음송 망향탑은 그얼마나 가족을 그리면서 살았으며 왕방연은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읊은 시조는 단종에대한 애련함이

      서린 곳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2) 선돌은 높이 70m 주상전립현상으로 산을 두 조각으로 갈라 놓은것 처럼 우뚝 서 있어 선돌이라고 했을까 자연의 신비함을 느꼈으며,

   3) 김삿갓 선생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수 있었고, 현대판 김삿갓 해설사님의 명쾌한 해설과 기념촬영에 서로 당기는 모습은 해설사

     의 활동중 큰 보람으로 느끼리라 생각 되며 부러움도... ... ... ~~~ 3분의 해설을 들으면서 많은걸 느끼고 배웠으리라 생각되어 집니다.

   ◆ 강원도의 기암절경은 마치 하롱베이를 보는듯 암석들과 석회암등 자원이 풍부함을 엿볼 수가 있었고 우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자연경관이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산채가 입맛을 돋우게하는 먹는 재미까지 + 되었습니다.

  영월기행을 기획하신 이연숙회장님을 비롯 임원진께 고맙고 感謝 했다고 전하면서 함께 하지 못한 회원님들께도 서운한 맘과 차후 기회때는

      꼭 함께 하시면 합니다. 모든회원님들께 행운과 건강을 빌면서 이자료가 영월기행의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면서 잘못된 기록이 있다면 수정

      하여주시기 바랍니다.